무엇을 할 것인가- 민주주의와 주권을 바로 세우는 12개념


- 민주주의와 주권을 바로 세우는 12개념
손석춘 (지은이) | 시대의창 | 2014-02-22

p. 138~139 '조선 후기 민중의 등장'
15세기 말까지 조선은 세계사적으로 선진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유럽과 달리 조선 왕조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형성했다.
조선은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상업적 성격이 가장 약한 나라였고, 자유로운 도시형성을 이룰 수 없었다.
 
유럽에서 상업 정보 교환을 목적으로 등장한 신문이 조선에선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그에 따라 정치의식을 키울 수 없었다.
 
p.143
신분제에 대해 퍼져가던 비판의식은 19세기에 들어와서 한차원 높은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민란이 그것이다. 민란의 중심에 향회가 있었다.
 
p.146
조선후기에 주동적으로 나선 민중의 역사적 의미는 유럽 중세 사회를 해체 시킨 시민계급과 견줄 만하다. 실제로 민중이란 말이 한국 역사에 처음 나타난 시기가 바로 갑오농민전쟁때였다.
 
p. 147-외세개입과 민주주의 왜곡
조선 사회에서 자주적으로 근대사회를 열어가려는 아래로부터의 맹아는, 지배세력이 밖을 끌어들임으로써, 조선을 식민지 시장으로 만들려는 밖의 세력이 지배세력을 유인함으로써 짓밟히고 말았다. 상징적 사건이 갑오농민전쟁이다.
새로운 사회의 요구에 맞서 기득권세력이 밖의 제국주의 세력과 손잡음으로써 갑오농민전쟁은 실패로 끝나고, 조선은 식민지 체제로 전락해갔다.
 
독립신문이 의병을 비도로 보도하고 의병 기사에 ‘놈’자를 쓴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p.149
“조선 사람 이마를 때리면 이마에서 일본인의 피가 나와야 한다”
이광수가 부르댄 민족개조의 도달점은 일본인이다.
...
민중의 힘을 믿은 지식인들은 주저 없이 노동자와 농민속으로 들어가 조직활동을 벌였다.
 
 
우리 힘으로 일본 제국주의 군대를 쫓아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명료하다. 많은 조선인들이 독립운동에 나서지 않아서다.
...
남북 전쟁이 일어나 350만명에 이르는 민족 구성원이 숨졌다. 만일 일제 강점기에 그 10분의 1이라도 민족 독립운동에 헌신했다면, 분단은 물론 참혹한 전쟁도 상상할 수 없었을 터다. 역사는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는 진실을 새삼 확인할수 있다.
 
p.151
4월 혁명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고 하기엔 부족한게 많았다. 혁명을 지도할 사상도 조직도 없었으며, 이승만의 하야에는 (반미 정권의 등장을 우려한) 미국의 ‘영향력’이 있었다.
 
 
 
 
민주주의 열어온 민중
 
p.156
경쟁체제에서 조금이라도 앞선 사람들은 비정규직이나 도시 빈민, 농민에 비해 자신은 선택받은 중산층이라는 환상을 지니게 된다... 저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이 모든 명백한 지배 질서의 ‘비밀’을 민중이 깨달을 때다.
 
p.158
민중이란 말을 낡은 시대의 운동권 언어 따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사실은 고스란히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짐작케 해준다. 그것은 의도했던 안했든 민주주의를 아주 낮은 수준에서 인식하고 있다는 자기 폭로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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