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적이 아니다 : 한국전쟁과 민간인학살, 그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국민은 적이 아니다 : 한국전쟁과 민간인학살, 그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신기철 지음


헤르츠나인 | 201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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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적이 아니다』는 두 방향에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하나는 그동안 절대적 권위를 누려오던 국방부에서 편찬한 [한국전쟁사]와 이른바 ‘전쟁영웅’들의 기록들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그 속에 내재된 오류를 자체 논리로 하나하나 비판해 나간다. 

그러면서 그는 민간인집단학살에 이르게 되는 배경으로 당시 국가권력의 무능과 이기심을 폭로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기밀로 관리되어오던 국가기록을 조사하면서 확인한 민간인집단학살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있다. 

전쟁에 패해 후퇴를 하면서도 치밀하게 자기 국민을 집단 학살한 사실을 사단별 후퇴경로를 추적하며 밝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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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추천사 진실과 인권을 찾아서

머리말 한국전쟁사를 되돌아보다

1장 피난민 제1호가 대통령?
이승만의 일주일과 전쟁 시나리오
정상성 | 이승만의 일주일 | 이승만에게 전쟁 시나리오가 있었을까? | 이승만의 부산행은 당연한 것 아니었을까?

2장 한강철교는 파괴되지 않았다?
한강철교 폭파, 그 수수께끼를 묻다
한강다리 폭파의 재구성 | 그러나 한강철교는 끊어지지 않았다 | 폭파가 일렀던 걸까 | 아군의 보호인가 공격의 저지인가 | 희생된 사람들이 민간 피난민이 아니라고? | 한강다리 폭파는 전쟁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 폭파 책임도, 폭파 실패의 책임도 규명되지 않았다

3장 적을 앞두고 사라진 김포지구전투사령관
전쟁 확대를 야기한 어이없는 김포 방어선 포기
6월 25일 김포 | 김포지구사령부의 급편과 인민군의 진입 | 27일 김포에 인민군 진입하다 | 사령관의 실종 | 계인주 대령은 누구인가? | 계인주와 민간인집단학살사건

4장 스미스 부대를 기억하다
이미 사라진 ‘특수임무’와 그들만의 패배
미군의 참전 결정과 스미스 부대의 파병 | 스미스 부대 착륙지 변경 의혹 | 스미스 부대와 국군 17연대의 전선 배치 | 교전 | 스미스 부대는 맥아더의 실험용 소모품이었을까?

5장 후퇴 국군은 왜 국민을 공격했나?
경기 강원 충북 경북 지역 형무소사건과 국민보도연맹사건
낙동강 전선으로 후퇴 | 후퇴하는 국군과 민간인 학살 | 미군 작전 지역에서의 민간인 학살 | 자기 국민을 죽여야 승리하는 이런 전쟁은 전쟁이 아니다

6장 전선이 없었던 호남도 피해가지 못했다
충남 호남 지역의 형무소사건과 국민보도연맹사건
전쟁 직후의 호남 지역 상황 | 호남 지역을 일부러 내준 것이라고? | 전선의 호남 진입 전 서해안 지역 피해 현황 | 호남 지역의 전투와 민간인 학살 | 학살이 임무였던 나주경찰부대의 활동 | 민중을 적으로 여긴 전쟁

7장 국방부에 간첩이 있다?
음모설을 부르는 한국전쟁의 수수께끼들
전쟁유도설 | 음모설의 등장 | 3월 차량과 전투 장비의 대규모 정비 | 4월 22일과 6월 10일의 사단장급 인사이동 | 6월 13~15일 전방부대의 후방 이동 | 운명의 6월 24일 | 6월 28일 국군의 중무장을 해제한 한강 철교 폭파 사건 | 6월 30일 미 정찰기의 인민군 수원 공격 보고 | 7월 3일 평택역 폭격 | 국군 8사단에 내려진 유령 명령 ‘대구로 이동하라’ | 미군 관련성 | 음모설이 가지는 의의

8장 국군 17연대는 과연 어디에 있었나?
인천상륙작전 참전의 허구
인천상륙작전 | 국군 17연대 | 작전명령서 | 살아남은 자의 역사 왜곡인가

9장 정말 인민군이었나?
‘적대세력사건’의 모순 고찰
사건의 비극적 성격 | 전개 과정 | 미군과 경찰의 조사 결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 의문점 | 억울한 죽음의 진실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10장 피난민은 적이었나?
국민은 없고 국군만 남은 국가
피난민에 대한 미군의 공격은 전쟁과 함께 시작되었다 | 영동 노근리 사건, 피난민 통제회의 후 최초 사건 | 이어지는 소개작전과 미 전투기의 피난민 공격 | 해군 공군이 총동원되어 포항의 피난민을 공격하다 | 1951년 1월 다시 피난민 공격이 시작되다 | 단양 미군 폭격 사건과 임실 군경 토벌 사건의 비교 | 국군과 경찰의 피난민 공격이 시작되다 | 토벌작전이 빨치산을 만들어 내다 | 토벌작전 희생자들에 대한 토벌 군경의 증언 | 민간인 학살이 전투성과로 보고되다 | 피난민 공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

11장 살아있는 것이 죄?
부역 처리의 불법성과 위헌성
’빨갱이죄‘에 ‘부역죄’가 더해지다 | 전쟁 발발과 학살의 제도적 준비 | 수복하던 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 합법을 가장한 처형, 지역별 현황 | 14후퇴 시기의 피해

12장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고?
「비상조치령」은 위헌이었다
국방경비법, 비상조치령은 위헌이었다 | 「비상조치령」의 공포 | 죄인은 죄인이 아니었고 재판은 재판이 아니었다 | 피해의 규모 | 이제라도 구제해야 한다 | 희생자와 가해자 | 부역혐의학살사건의 역사적, 사회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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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5일 오후 국무회의 직후 가장 먼저 공포한 법령은
계엄령도 피난 명령도 아니라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비상조치령)이었다. 이 법은 6월 28일 부터 '국민보도연맹사건'을 격발 시켰다.

6월 26일 부터서울 사수와 철수를 놓고 밤샘 국회 토론이 진행되는 와중에 이승만은 특별열차를 타고 대구로 피난, 지나치게 멀리왔다는 조언에 따라 다시 대전으로 이동. '조금 고생이 되더라도 안심하고 굳게 참고 있으라'는 대 국민 방송.


1949년 10월 CIA의 질문

  • 전남도민은 정부에 충성스러운가?
  • 경찰이 국민을 부당하게 대하고 있는가?
  • 육군은 효과적인 전투 능력을 갖고 있는가?
  • 정부는 38선 공격을 계획중인가?
  • 국군의 38선 공격이 경제 부흥에 방해가 되는가?

1949년에 이미 웅진반도에서 격렬한 고지전, 10월에는 해주 점령등 각지에서 전투 산발.

미국의 기본 전략 : 후퇴 후 반격

1947년 8월 미국의 대소전략계획연구문서 : 전쟁 발발시 주한 미군은 일본으로 철수 후 반격

극동사령부 정보책임자 윌로비 소장 : 3월 또는 6월에 전쟁 발발

1950년 6월 19일 미 국방부 '우발계획 SL-17 : 인민군 침공시 낙동강 유역에서 방어선 구축, 인민군의 측면을 우회하는 상륙작전 전개'


6/28 한강다리 폭파는 (피난민들의) 남쪽으로의 탈출을 효과적으로 막아 피난민 문제를 최소화한 성과 (CIA)
8/3 경북 칠곡의 왜관교 폭파 희생자도 대부분 민간인.

8240부대(켈로부대, KLO, korea liaison office) : 1949년 6월 창설, 적진 침투와 후방 교란을 목적으로 맥아더사령부가 창설, 미군 직접 지휘. 해병특공대, 향토방위대등 정보부대 운영, 51년 1~2월 강화도 교동 주민 200여명 살해.

국군8사단 : 강릉-제천-단양-영주-안동-대구
7.6 제천 한수면 동창리 주민 50여명
7.13~16 예천 주민 150여명
8.7~11 영천 주민 400여명

국군6사단 : 춘천-홍천-원주-충주-문경-보은-낙동강전선
6.28 횡성 주민 100여명 - 추동리 고내미 고개, 곡교리
6.30 원주형무소 수감자 180여명
7.1 여주 주민 - 건지미골짜기
7.5 충주 주민 - 호암동 싸리고개
7.5 음성, 진천군 만승면 조리방죽
7.8 원남면 문암리 백마령고개
7.9 괴산 주민 800여명 - 청원군 북이면 옥수리 옥녀봉, 괴산군 감물면 공동묘지, 청안면 조천리 솔재티, 괴산읍 남산
7.11 청원군 오창면 양곡창 300여명
7.10 문경 농암면 뭉우리재
7.14 호서남면 유곡리
7.16 영순면 김용리
7.17 상주, 유치장 주민 - 낙동면 성골, 구잠리 부치데이골짜기

수도사단, 2사단, 7사단 : 진천-오창-청원-보은-안동-청송-낙동강전선
6.27 서대문 형무소 수용자 200여명 - 서빙고 강변
6.30 진천 - 성석리 할미성 고개, 문백면 옥성리 말부리고개, 덕산면 신척리 구시울골짜기
7.9 오창창고 300여명
7.15 보은 200여명
7.22 안동형무소 200여명, 유치장 170여명 - 수상동 한티재, 성곡리계곡
7.24 의성 50여명 - 비안면 짝두골
7.31 상주 - 소갯골골짜기, 청송 - 지동고개, 사곡면 뒷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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