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민중항쟁,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 4.3 항쟁 (2/2)
95%노동자가 참여한 3.10 총파업
분노한 제주도민들은 미군정에 ‘발포책임자 처벌과 경찰수뇌부 해임, 연행 인사 석방, 경찰 무장해제와 경찰 내 친일 민족반역자 축출’을 요구했습니다만, 답변은 없었습니다.
3월 10일, 학생들은 동맹휴업을 하고, 노동자들은 기계를 멈추고, 공무원들은 행정을 멈추고,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은 철시하고, 길거리의 상가는 문을 닫았습니다.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3월 22일까지 관공서, 학교, 금융기관, 교통기관, 발전소, 공장 등 전체 기관의 95%인 156개 기관단체, 41,211명이 참여한 총파업이었습니다.
제주도의 총 파업은 해방을 막아나서며 독립운동세력을 탄압하는 미군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친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항쟁이었습니다.
서북청년회와 ‘레드아일랜드’
그러나 미군과 경찰은 제주도를 ‘빨갱이 섬’이라 규정하고 서북청년회를 앞세워 무자비한 테러로 주민을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가 벌인 그것보다 더한 제국의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윤도는 특공대원에게 그들을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 명씩 등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눈이 튀어나오며 꼬꾸라져 죽었습니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가 더 많았지요. 여자들 중에는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윤도는 젖먹이가 죽은 엄마 앞에서 바둥거리자 칼로 아기를 찔러 위로 치켜들며 위세를 보였습니다. 도평리 아기들이 그때 죽었지요. 그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꼴을 보니 며칠간 밥도 못 먹었습니다." 출처: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271쪽
1948년 4월 3일-‘탄압이면 항쟁이다’
미국은 애초에 조선을 자국의 전초기지 정도로 생각했기에 독립운동세력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친일청산은 커녕 일제에 부역했던 자들을 파트너로 삼았습니다. 이들에게 권력을 쥐어줌으로 이제 독립운동 가문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 조차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마침내 미국이 추진하고 친일 세력이 주축이 된 분단 정부를 인정하는 선거가 다가왔습니다. 대립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앞으로 벌어질 일은 명약관화했지요.
4월 3일, 사람들은 무장대를 결성해서 ‘단선·단정 반대’, ‘응원 경찰과 서청의 추방’을 주장하며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중 12개를 습격했고, 5월 10일 단독정부 제헌의원을 뽑는 선거를 무산시켰습니다.
한국전쟁과 ‘클렌징’
제주도는 물론, 남한 전역에서 민중들의 항거는 끊임없이 벌어졌습니다.
46년 10월에는 대구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항쟁이 벌어졌고, 47년 3월에는 남한 전지역에서 총파업이 벌어져 김원봉등 인사가 구속되었습니다.
48년 10월에는 제주도민 진압명령을 거부한 여수/순천의 군인들은 봉기를 일으켰고, 이를 진압하는 명분으로 호남 전역에서 광범위한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2차대전 종전이후 미국은 나치독일을 괴멸시킨 소련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상대편을 악마화하며 유일한 패권국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했습니다.
해방을 축하하고 독립국가를 건설해야하는 마당에 남한 전역이 내전과 같은 상태로 빠져든 것은 독립정부를 애초부터 인정하지 않고 친일파를 등용해 독립세력을 탄압한 미군의 책임이 컸습니다.
국제법도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분단 정부를 추진해 온 미군은 1950년 한국전쟁이 전면 발발하자 군과 경찰을 더욱 강화해 민족청소 Ethnic Cleansing를 본격화했습니다. 말 그대로 식민지 건설을 위해 원주민을 ‘클렌징’하는 과정을 밟은 것입니다.
미군정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분단은 확고해졌고, 반소반공의 최전선이 되었습니다. 평화 통일을 이야기해도, 사상과 정견을 떠나 호혜평등을 이야기해도 빨갱이로 몰려 형장으로 끌려가야했습니다.
4.3항쟁의 현재적 의미
3만 여명의 무고한 양민이 죽어간 4.3 항쟁은 독립국가 수립과 분단 반대를 염원하던 대다수 민초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사건입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냉전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현대사의 대표 사건입니다. 미국의 왜곡된 세계관과 거기에 기대어 정권을 수립했던 세력은 제주도와 한반도를 철저하게 짓밟았습니다.
구한말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일본은 미국의 지원하에 전쟁을 꿈꾸며 다시 한반도 진출을 노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부화뇌동한다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죽고 죽여야 했던 아픈 역사가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4.3 항쟁은 지난날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역사입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더 늦기전에 미국이 사과하고 진정한 평화 세력으로 전환되길 바라는 전 세계 양심의 목소리를 4.3이 담고 있는 것입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