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체제에 기생하는 박근혜 정권 - 정석구 한겨레 편집인



분단체제에 기생하는 박근혜 정권
 
정석구 한겨레 편집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 헌법재판소의 법리가 얼마나 무리한지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통합진보당에 반대하는 것과 이 당을 해산하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데 헌재 재판관 8명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반대 여론과 자신들의 공안적 소신을 곧바로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연결했다.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반민주적이고 비논리적인지는 유일하게 소수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의 논지에 비춰보면 잘 드러난다.

해산 결정이 8 1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이뤄진 것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도 있지만, 박정희 독재의 길을 열어준 유신헌법도 투표율 91.9%, 찬성률 91.5%로 통과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유신의 역사적 당위성이 국민의 승인을 받았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독재는 늘 합법의 탈을 쓴 채 국민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끓어오르는 저항을 무력화하면서 슬그머니 우리의 일상을 옭아맨다.

헌재 결정 이후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이념 갈등이다. 헌재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종식시키길 바란다고 했지만 오히려 이념 갈등을 조장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보수단체는 헌재 결정이 나오자마자 이정희 전 대표를 포함해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도 기다렸다는 듯이 진보세력에 대한 공안몰이에 나섰다. 저항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남북 분단 국면에서 이처럼 이념 갈등이 전면에 부각되면 접점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6·25라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은 상황에서 이념 갈등은 곧 전쟁 상태를 의미한다. 전쟁 상태에서는 적과 동지만 있을 뿐 중간지대가 용납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이념을 가진 집단은 배제와 말살의 대상이지 타협이나 포용의 대상이 아니다.

이번 헌재 결정 법리의 바탕에는 이런 전쟁 논리가 깔려 있다. 헌재가 통합진보당 해산과 함께 이 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국회에서 몰아내고 정부·여당이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피선거권까지 박탈하려는 것도 이런 전쟁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런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면 다양성과 포용성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는 설 땅을 잃게 된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진보세력에 대한 탄압을 넘어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보세력들이 통합진보당식 종북 진보를 청산하고 순수 진보로 거듭나면 될 게 아니냐고 하지만 공허한 말장난일 뿐이다. 우선 종북이란 개념 자체가 너무 포괄적이다. 그리고 어떤 개인이나 정치세력이 종북인지 아닌지를 누구의 판단에 맡긴단 말인가. 지금 칼자루를 쥔 쪽은 합법적 공권력을 장악한 수구·냉전 정권이다. 배제와 말살 논리로 무장한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종북 숙주유사 통진당으로 몰아붙여 가차 없이 종북의 칼날을 휘두를 것이다. 그들의 잣대를 만족시킬 순수 진보는 없다.

남북 화해와 평화가 진보세력의 성장이나 민주주의 발전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분단 상황을 고정 변수로 두고 북한을 악의 화신으로 상정하는 한 이념 갈등은 불가피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는 질식할 수밖에 없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대가 그런 상황이었다.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고, 안보를 빌미로 정부에 비판적인 개인이나 단체를 빨갱이로 몰아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유지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꼭 그런 길로 가려하고 있다.

분단체제에 기생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구·냉전 세력이 득세하는 한 민주주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진보의 재구성에 앞서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은 남북 간의 정치·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이념 갈등을 조장하는 냉전 숙주를 뿌리뽑는 일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는 분단체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기춘과 헌법재판소
 
 
법비(法匪)란 말이 있다. 온갖 비적이 들끓던 만주에서 가장 무서운 비적은 법으로 무장한 법비였다. 김기춘 이야말로 법비 중의 법비였다.
 
(1) 1994
199212월 초원복집 사건으로 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김기춘은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인 19933선거운동원이 아닌 자의 선거운동을 규정한 구() 대통령선거법 제36조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참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어 위헌이라며 법원에 위헌제청을 신청했다. 1994 여름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김기춘에 대한 재판은 공소 취소로 없던 일로 끝났다.
 


- 14대 대통령선거를 이틀 앞둔 19921216, 전 법무장관 김기춘이 부산에서 부산시장·검사장·경찰청장·안기부지부장·교육감·기무부대장·상공회의소장 등 기관장을 모아놓고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겨 민자당 김영삼 후보를 지원할 것을 모의했는데 이를 국민당 정주영 후보의 아들 정몽준 의원 쪽에서 도청하여 녹음한 테이프를 공개한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검찰은 초원복집에 모인 기관장들을 공식 석상이 아닌 사적 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가지고 처벌할 수는 없다며 무혐의 처분하고 모임을 주재한 김기춘 만 불구속 기소했다.

- <동아일보>는 김정훈 기자의 기명칼럼(1993320일치)을 통해 장관 재직 당시 유난히 선거관련법의 엄정한 집행을 강조했던 김기춘이 막상 이 법률이 자신에게 올가미로 다가오자 이의를 제기했다며, 이 위헌심판 제청이 법의 이름을 빌려 면죄부를 구하려는 탁월한 법률가 김기춘의 완벽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 2004
김기춘은 1996년 신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고향 거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2000년과 2004년 선거에서 연거푸 당선되어 3선 의원이 되었다. 국회의원 시절 그가 가장 플래시 세례를 받은 것은 2004 312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뒤 헌법재판소에 탄핵안을 접수시킨 때였다. 당시 김기춘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탄핵소추의 검사 격이었다.
 
(3) 2014
6월항쟁의 산물로 탄생한 헌법재판소를 잘 이용해 살아난 유신본당에 지역감정의 화신 김기춘은 201311월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다시 헌법재판소로 가져갔다. 마침내 201412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을 선고하고 국회의원 5명의 자격마저 박탈시켜 버리는 결정을 내렸다.



야당 복도 없다
 
양권모 논설위원
 
 
무척 낯선 장면이었다. 강 같은 평화가 넘쳐난 연말 국회새로운 정치의 패러다임”(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도래를 착각하게 할만 했다. 매번 여야 대치와 충돌의 포연이 자욱하던 국회 한복판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이고, 여야 의원들은 몸싸움 대신 울면 안돼캐럴을 합창했다

야당 잘했다. 괜찮은 정당이다라는 여당 원내대표의 말에는 감격이 넘쳤다. 1야당 원내대표는 정치입문 11년 만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냈다고, 행복에 겨워했다. 여야는 합심으로 팍스 국회를 찬양했다

세월호 팽목항, 쫓긴 노동자들이 오른 첨탑, 전기도 끊긴 밀양 송전탑 천막 농성장 등 고단한 삶의 현장에 널린 폭력과 대비되어, 국회만의 평화는 묘한 기시감마저 일으켰다. 여야가 한 번의 충돌도 없이 모든 쟁점 현안을 합의로 처리하고, 합심으로 팡파르를 울리는 광경만 처음 본 게 아니다. 이리 사이좋은여야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필시 이만한 기적(?)이 일어나려면 충분조건이 있어야 한다. 여야가 대립하고 싸울 만한 거리가 아예 없었거나, 새누리당이 청와대 우산을 벗고 자립적 여당으로 거듭났을 때이다. 둘 다 아니다. 세월호 참사, 정당 해산, 비선 의혹, 노동 문제 등 싸울 거리는 너무도 많았다. 하나같이 민주주의와 기본권, 국민 생존권과 직결된 야당의 의제들이다. 무엇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여전히 새눈치당”(이재오 의원)답게 청와대 가이드라인에 충일했다.
 
그렇다면 그 기적, 여당에 참으로 괜찮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만들어 냈다
연말 정산을 해보면 확인된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적시한 세월호특별법, 예산안, 담뱃값 인상, 공무원연금, 부동산 3, 자원외교 국정조사 등은 죄다 정부·여당의 방안·전략대로 처리됐다. 세월호특별법 과정에서 보여준 새정치연합의 질곡은 새삼 환기할 것도 없다. ‘담뱃값 2000원 인상은 한 푼도 깎지 못하고 맥없이 들어줬다

무원연금 개혁은 강제성 없는국민대타협기구를 구성하는 조건으로 ‘4월 처리에 도장을 찍었다. 소위 사자방중에서 4대강 사업은 빠지고 자원외교 국조를 성사시켰지만, 대상을 김대중 정부부터로 소급함으로써 하나마나한 게 되어버렸다

새정치연합은 부동산 부자의 이해에 맞춰진 부동산 3법도 정부안대로 통과시키는 데 동참했다. 국정조사·특검을 공언하던 비선 의혹은 국회 운영위 개최로 퉁치는 길을 택했다

민주주의를 유린한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에 대해선 종북 프레임에 포획되어 몸사리기에 급급했다. 새정치연합만의 대안 입법을 마련하거나 통과시킨 것도 없다. 정산 결과를 내기 어렵지 않다. 새정치연합에는 온통 ‘-’뿐이다. 새정치연합에 남은 건 싸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문희상 비대위원장)는 이상한 자기위안뿐이다.
 
무작정 싸우지 않은 것이 야당의 자랑이 될 수는 없다. 야당은 본디 반대(opposition)와 대안(alternative)을 양축으로 한다. 정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들이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바로 정치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과감히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기보다 대화와 타협을 운위하며 방관하는 길들여진 야당’, 지금 새정치연합이 존재하는 꼴이다.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줄곧 새누리당의 절반에 묶여 있다. 인사 참사, 세월호 참사, 공약 파기, 비선 의혹 등 잇단 실정에도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여당이 잘못을 하든, 자신들이 잘한 일이 있든 변함이 없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당이 상승하는 원리가 통하지 않는다. 새정치연합이 대안정당의 지위마저 상실하고 있음을 이만큼 고지시키는 것도 없다.
 
야당이 굳건하고 제 역을 했다면 세월호 이후가 달라졌을 수 있고, ‘비선 문제찌라시와 진돗개로 덮어버리고, 헌법재판소가 정당 해산 결정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독주와 불통이 한 치의 교정도 없이 가속되는 데는 견제력을 상실한 무능한 야당의 탓도 크다. 허약한 야당은 당연히 청와대 출장소에 머무는 새누리당의 변화와 분발을 막는다. 연말 국회에서 보듯 이대로도 만사형통인데 변화의 필요를 느낄 까닭이 없다

국민은 물론 정권과 여당을 위해서도 강한 야당은 필요하다. 새정치연합이 무기력을 벗지 못하고 강한 야당으로 서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 3년차도 지난해보다 나아지지 않을 터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 복을 타고났는지 모르지만, ‘야당 복도 없는 국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87
21세기판 보도연맹사건을 꿈꾸는가
 
 
이승만 정권, 6·25 일어나자 좌익사범 무차별 학살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신 보도연맹부활 우려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날, 어떤 이는 1972년 유신 전야, 어떤 이는 이승만 정권 하에서 조봉암 선생 사형과 진보당 말소 등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6.25 전쟁 초기 벌어진 보도연맹사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처참했던 국가 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말입니다.

물론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저지른 과오를 두둔하는 건 아닙니다. 지도부의 일원이었던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이 보인 당 운영의 반민주성과 폭력성, 패권주의는 과거 독재 정권 담당자들의 행태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이 친북 패권주의와 폭력성과 결별하지 못한 것도 이들에 대한 기대를 접게 했습니다. ‘당명에 삽입한 진보란 말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은 결코 약자의 편도 아니었고, 정의롭지도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런 정당이라도 심판은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는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헌재 결정은 우리 헌법이 지키려는 정치적 결사의 자유와 정당 정치의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헌재에 정당 해산 여부를 심판하는 권능을 부여한 것은 행정권의 부당한 압력과 침해로부터 정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 정당의 존립을 재단하라는 건 아니었습니다. 재판관들의 편견과 예단이 그대로 반영되고, 정권의 주문이 그대로 수용된 심판 과정은 민주 사회가 가장 경계하는 인민 재판의 본보기였습니다.

세계헌법재판기관 협의체인 베니스 위원회가 이번 해산 심판 결정문을 요구했다니, 그런 무모함과 독선에 대한 국제적인 시선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베니스 위원회는 이미 정당 해산 심판 제도가 극히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권고를 이미 각국 헌법재판기관에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시비를 따지는 건 한가한 일일지 모릅니다. 이 정권은 설사 베니스 위원회에서 부당하다는 권고를 한다 해도, 한반도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미 국제노동기구나 국제인권협약 등의 권고를 무시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더군다나 헌재 결정 이후 해산된 당 지도부와 당원에 대한 광범위한 억압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이 부실한 헌재 결정을 인용한다면, 이들을 이적단체차원을 넘어서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구성 등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이른바 부역자들에 대한 사냥도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6.25 전쟁 초기 발생한 보도연맹사건은 그런 극단적 경우였습니다.
해방공간에서 이 나라 국민들은 국가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를 놓고 많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좌익도 있고 우익도 있었습니다. 친일파도 있었고 독립운동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좌익을 배척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소외시켰습니다. 특히 물리적으로 미군정 및 이승만 정권과 맞섰던 좌익 사범들은 보도연맹이라는 전향자 단체에 등록시켜 관리했습니다. 말이 보호단체지 실은 요시찰 대상자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단체였습니다. 일제가 불령선인에 대해 쓰던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던 것입니다.

보도연맹에는 좌익사범만 강제로 가입시킨 건 아닙니다. 그 가족은 물론이고, 이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제공한 사람들까지 포함시켰습니다. 친일파가 대다수였던 군경이나 우익단체 관계자와 사이가 안 좋은 이들까지도 강제로 포함됐습니다. 보도연맹 회원들에게는 공민증이나 도민증을 주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낙인이나 다름없는 보도연맹증만 주었죠. 그런 이들의 숫자가 무려 30만 여 명에 달했습니다.

6.25 전쟁이 나자 이승만 정권은 이들을 예비 검속했고, 북한군이 밀려오자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군경은 물론 서북청년단 등 우익청년단체까지 이들을 죽이는데 동원됐습니다. 일가친척이 무고하게 살해된 것도 억울한데, 생존한 그 가족까지 연좌제를 적용해 사찰하고 취업을 제한하는 따위의 범죄는 계속됐습니다.

통합진보당 당원은 10만 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당비를 꼬박꼬박 내는 진성당원만 3만여 명에 달하고요. 이제 그들은 폭력으로 북한의 체제를 이 땅에 세우려고 했던 자들로 규정 당했습니다.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은 물론 아르오와도 무관하고, 회합에 참여했다고 해도 사제 총을 만들어 맞서자는 발언에 코웃음 치던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그들은 모두 21세기 판 보도연맹에 묶이게 된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안창호, 조용호 재판관은 광장의 중우(어리석은 대중), 기회주의 지식인 언론인, 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영합 정치인까지도 경계의 대상으로 꼽았습니다. 그들과 생각이 다른 이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기본권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들까지도 포함시키려는 것입니다. 당장 저와 <한겨레> 구성원 모두는 그런 기회주의 언론인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이른바 아르오 회합에서 일부 참석자는 전쟁 등 비상한 상황에서 주요 국가시설 파괴 등을 언급하며, 예비검속과 학살 테러에 의한 죽임 따위를 언급했다고 했습니다. 예비검속, 학살 따위의 이야기를 듣고는 쓴웃음만 나왔습니다. 이미 해방 이후 국가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에 대해 정부가 재평가도 하고, 사죄도 하고, 배상도 하고, 기념물도 곳곳에 세워진 터입니다. 그들의 공포감이 망상이거나 아니면 변명 같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헌재 결정을 보고, 또 이후 진행되는 행태들을 보며 그런 나의 생각은 바뀌고 있습니다. 이 정권은 이미 그들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기본권을 박탈하고, 이 사회에서 영구히 고립시키고 배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헌재는 그들을 사실상 반국가단체로 낙인찍었습니다. 관변 단체들은 즉각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를, 사형까지 가능한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 등으로 고발했습니다.

당원들 다음으로 정리될 사람은 그들이 정리되면 부역자, 혹은 쓸모 있는 바보들이 될 것입니다. 지식인, 언론인, 우중, 정치인, 진보주의자 등이 그들입니다. 이게 보도연맹사건의 부활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점이 하나있다면 해방공간에서는 친일파에 의해 주로 저질러졌다면, 지금 사태를 주도하는 이들은 온갖 편·불법으로 기득권을 쌓아올리거나 탈취한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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