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꿔 온 투표(1/2)

 역사를 바꿔 온 투표(1/2)


2023.09.19
#역사이야기 #국회의원 #투표


주위를 둘러보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적지 않은 분들이 걱정을 하시네요. 탄압과 통제속에서 누가 원내 1당이 되느냐에 따라 남은 기간 국민의 권리도 크게 변할테니까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민중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민주주의를 쟁취해 온 독보적인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노동조합 간부들이 알고 있으면 좋을 선거 역사 몇 가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걸어온 길을 잘 알아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고, 조합원을 믿는 것에서 간부 활동이 시작되듯이 대중의 힘에 대한 신뢰는 간부의 기초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1950년 5월 30일)

(1948년 여순사건으로 희생된 가족의 시신을 확인하고 울고 있는 여인들. 칼 마이던스 미국 기자의 사진)

분단 정부 수립을 주도한 이승만 정부는 분단을 반대하는 독립투사와 민중을 학살하는 등 극도의 탄압으로 일관했습니다.
1950년은 이러한 탄압이 더욱 거세지는 때 였습니다.
친일파를 앞세운 학살과 공포정치속에 누구 하나 정부를 반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더구나 이 때는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선출(간선제)했으니, 정권의 명운이 걸린 선거였습니다. (총 선출 인원 210명)



그러나 모두의 예상과 달리 선거 결과는 정부 여당의 참패(대한국민당 24명 당선)와 무소속의 대거 당선이었습니다. (무소속 126명 당선)

사실상 이승만 정권의 운명은 끝난셈이었지요.
아마 다음달(6월말)에 한국전쟁이 전면 발발하지 않았다면 국회는 다른 대통령을 선출하려 했을겁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1985년 2월 12일)



1980년 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그 과정에서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북한의 사주에 따른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하고 감옥에 가두었다가
거센 국내외 압력에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고 미국 망명을 허용했습니다(82년 12월)


276명을 선출하는 85년 총선은 선거구별 2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 였습니다.
여당(민주정의당)과 관제야당(민주한국당)이 1,2위로 당선되는 선거 제도였지요. 더구나 선거시기를 2월로 앞당김으로서 야당(신한민주당) 창당 보름만에 총선을 치루게 했습니다.


정보기관의 완벽한 언론 통제속에서 재야 민주화세력의 모든 활동은 불법으로 처벌하였고, 민중들의 분노는 표현 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영삼과 함께 재야의 거목이었던 김대중이 선거 4일 전에 목숨을 걸고 미국에서 전격 귀국하면서 민중들의 심판 열기는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투표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야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선거 제도였음에도 갓 창당한 신한민주당이 서울에서 43%를 득표하면서
(민주정의당 27%), 총 67석을 얻어 단숨에 제1야당으로 등극한 것입니다.

* 신민당의 득표 결과 일부

    여당과 함께 어용 야당까지 표로 심판한 민중들의 열기는 민주화 의지가 선명한 진짜 야당 국회의원들의 활동과 더불어 힘을 발휘하면서 87년 민주화투쟁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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