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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사태 400일: 87년 체제를 넘어 대전환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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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비상계엄 부터 특검 기소까지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멈추려 했던 비상계엄 선포부터 2026년 1월 현재 조은석 특검의 최종 기소와 결심 공판까지. 헌정 사상 유례없는 '내란 사태'의 긴박했던 주요 일지를 정리합니다 #비상계엄 #윤석열탄핵 #12.3 계엄 #저항의기록 #내란 특검 1. 계엄 선포와 민중의 즉각적 저항 (2024년 12월) (이런 인물이 육사 수석입학  ...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 한국사회 평가 제도의 문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국회로 군 병력이 투입되었으나, 시민들이 국회 앞을 메우며 계엄군과 대치 하는 직접 저항이 시작됨. 12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시민들의 국회 사수와 노동계·사회단체의 즉각적인 '퇴진 투쟁' 선포로 계엄 시도가 6시간 만에 좌절됨. 12월 7일~14일: 매주 수백만 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윤석열 퇴진 촛불집회' 전국 확산.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총파업 투쟁이 논의되며 압박 수위가 높아짐. 12월 14일: 국회,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및 대통령 직무 정지. 권력기관의 방패를 뚫고 '파면 심판' 쟁취 2. 권력기관의 조직적 은폐와 체포 방해 (2025년 1월 ~ 3월) 1월 3일: 공수처와 경찰이 관저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했으나, 대통령경호처가 무력을 동원해 이를 물리적으로 저지 . 이 과정에서 경호처 내부의 '체포 협조' 의견을 낸 간부들이 보복성 해임을 당함. 1월 15일: 2차 영장 집행 끝에 윤 전 대통령 체포 및 구속기소. 3월: 사법부 및 검찰 일부의 옹호 논란 : 지귀연 판사가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를 받아들여 석방하고, 심우정 당시 검찰총장이 이를 승인하며 '면죄부 수사' 비판이 거세짐. 3. 대통령 파면과 제21대 대선 (2025년 4월 ~ 6월) 4월 4일: 헌법재판소, 윤석열 대통령 파...

2025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는 「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의 주요 내용과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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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기존에 발의된 7건의 법률안을 통합·조정한 것 학교급식 종사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과 인력난 해소,  급식의 안전성 강화를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1. 법안의 제안 취지 (배경) 현재 학교급식 현장이 직면한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안 * 급식 종사자의 열악한 환경 및 인력난: 고온 다습하고 유해물질(조리흄 등)에 노출되는 노동 환경으로 인해 급식 종사자들의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으며, 이로 인한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 학교급식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 과도한 업무 부담: 거대 과밀 학교의 경우에도 조리사/조리실무사/영양교사 배치기준이 타 급식현장과 비교해서 업무 부담이 과도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습니다 * 불량 식재료 업체 제재 근거 미비: 식품위생법 등을 위반한 업체에 대해 입찰 참가를 제한할 법적 근거가 부족했습니다. 2. 법안의 주요 의의 및 핵심 내용 이 법안은 학교급식 종사자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노동 강도 완화와 안전을 위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① 학교급식 종사자의 법적 지위 및 국가 책임 명문화 * 정의 신설: 법률에 '학교급식종사자'의 정의(조리사, 조리실무사 등)를 신설하여 이들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했습니다. * 건강과 안전 보장: 국가와 지자체가 학교급식 종사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시책을 강구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② 노동 강도 완화 (배치 기준 마련) * 적정 식수 인원 기준 법제화: 교육부장관은 연구·조사를 통해 '학교급식 종사자 1인당 적정 식수 인원(식사 인원) 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정해야 합니다. * 배치 기준 준수 및 공표: 교육감은 이 기준에 따라 배치 기준을 수립하고, 준수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여 결과를 공표해야 합니다. 이는 노동 강도를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는 중요한 법적 장치입니다. ③ 영양교사 인력 확충 * 2인 배치 의무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표는 없다…진보정당에 준 한 표가 바꾼 5가지 장면(201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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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hani.co.kr/arti/politics/assembly/739503.html 사표는 없다…진보정당에 준 한 표가 바꾼 5가지 장면 김지은 기자 구독 등록 2016-04-13 14:42 수정 2016-04-13 14:52 [선택 4·13] 될 사람 찍어주자? ‘사표’의 우려를 접어두고 행사했던 표의 힘 선거 때마다 많은 유권자는 흔들린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하나의 질문 때문이다. 내 표가 사표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커진다. 그러다가 귀중한 한 표를 사표로 만드느니 ‘될 사람’을 찍어주자는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그래서 <한겨레>가 ‘사표’를 걱정하는 여러분을 위해 살펴봤다. 시민들이 ‘사표’의 우려를 접어두고 행사했던 그 표는 어떤 힘을 갖게 됐을까? 다음은 선거 때만 되면 ‘사표론’에 시달리는 진보정당에 시민들이 준 한 표가 바꾼 우리 사회 5가지 장면이다. 의원회관 엘리베이터. 한겨레 자료 1. 국회의원 전용 엘리베이터가 사라졌다 . 국회 본청과 의원회관엔 ‘의원님’만 탈 수 있는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민주노동당이 ‘금배지 특권’ 철폐를 내세우며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 폐지에 앞장서고 열린우리당이 호응해, 수십년 동안 관행처럼 운영되던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는 2004년 사라졌다. 2010년 3월 3일 오전 11시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수도권 제1호 신형 저상버스 시승식이 열렸다. 경기도청 제공 2. 장애인도 탈 수 있는 저상버스가 생겼다. 지금은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저상버스는 2004년 통과된 민주노동당 법안의 결과물이다. 애초 건설교통부는 예산이 많이 든다며 저상버스 도입을 ‘권고’했다. 하지만 ‘장애인이동보장법안’ 속 ‘이동권’ 개념이 강조되면서 저상버스는 의무적으로 도입하게 됐다. 2011년 11월 16일 주민소환 투표가 치러진 과천시 갈현동 제4투표소인 경로당에서 한 시민이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 풀뿌리 지방자치 실현할 주민소환제가...

역사를 바꿔 온 투표(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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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바꿔 온 투표(2/2) 2023.10.10 #역사이야기 #간부론 #029 #국회의원 #투표 #정치기본권 1992년 14대 국회의원선거(1992년 3월 24일) 1987년은 전두환 독재의 탄압에 맞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뒤이은 민주노조 건설로 우리 사회가 명실상부 민주주의로 한발 내디딘 해였습니다. 여소야대의 국회는 5공 청문회, 개발이익 환수법, 주 44시간제등 다양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민주노조 건설을 본격 시작한 1987년 노동자 대 투쟁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유를 채 누리기도 전인 1990년에 모두를 충격에 빠트린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민주화 투쟁을 이끌던 김영삼이 전두환의 후예 노태우, 박정희의 후예 김종필과 합당을 발표한 것입니다. 국회의원 217명의 공룡여당이 탄생하면서 여소야대는 2년 만 뒤집어졌습니다. 광주항쟁의 정신을 이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려던 민주화운동 세력은 순식간에 빨갱이로 몰리고 수많은 이들이 다시 수배되고 구속되었습니다. 3당 합당과 공안탄압으로 1991년 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은 당선자의 65%를 차지했습니다. 1992년 국회의원선거에서도 민자당의 압승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안기부까지 나서서 출마자들을 통제했으니까요.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217석의 민자당은 149석으로 줄어들어 과반에 미달하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온갖 탄압과 왜곡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거대 여당을 심판하고 다시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선거이후 노태우 정권은 본격적인 레임덕 상황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에는 전두환과 나란히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2년전 3당 합당을 성사시킬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결과였지요. 2016년 20대 국회의원선거(2016년 4월 13일) 2012년 19대 총선은 (이명박)대통령의 임기말 선거였음에도 여당인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단독 과반을 차지했습니다. 떨어진 지지율을 올리고자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민생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

역사를 바꿔 온 투표(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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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바꿔 온 투표(1/2) 2023.09.19 #역사이야기 #국회의원 #투표 주위를 둘러보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적지 않은 분들이 걱정을 하시네요. 탄압과 통제속에서 누가 원내 1당이 되느냐에 따라 남은 기간 국민의 권리도 크게 변할테니까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민중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민주주의를 쟁취해 온 독보적인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노동조합 간부들이 알고 있으면 좋을 선거 역사 몇 가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걸어온 길을 잘 알아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고, 조합원을 믿는 것에서 간부 활동이 시작되듯이 대중의 힘에 대한 신뢰는 간부의 기초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1950년 5월 30일) (1948년 여순사건으로 희생된 가족의 시신을 확인하고 울고 있는 여인들. 칼 마이던스 미국 기자의 사진) 분단 정부 수립을 주도한 이승만 정부는 분단을 반대하는 독립투사와 민중을 학살하는 등 극도의 탄압으로 일관했습니다. 1950년은 이러한 탄압이 더욱 거세지는 때 였습니다. 친일파를 앞세운 학살과 공포정치속에 누구 하나 정부를 반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더구나 이 때는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선출(간선제)했으니, 정권의 명운이 걸린 선거였습니다. (총 선출 인원 210명) 그러나 모두의 예상과 달리 선거 결과는 정부 여당의 참패(대한국민당 24명 당선)와 무소속의 대거 당선이었습니다. (무소속 126명 당선) 사실상 이승만 정권의 운명은 끝난셈이었지요. 아마 다음달(6월말)에 한국전쟁이 전면 발발하지 않았다면 국회는 다른 대통령을 선출하려 했을겁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1985년 2월 12일) 1980년 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그 과정에서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북한의 사주에 따른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하고 감옥에 가두었다가 거센 국내외 압력에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고 미국 망명을 허용했습니다(82년 12월) 276명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