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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정치기본권의 역사와 국제적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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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 정치기본권의 역사와 국제적 비교 #민주주의 #공무원 #교사 #정치기본권 정치라고 하면 우리는 ‘특별한 신분’의 사람들이 ‘일반인을 통제하는 행위’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정치란 원래 사회적 재부를 어떻게 분배할지 결정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수천만 명이 모여 회의를 할 수 없으니 각 영역의 무리를 대표하는 사람을 선출해서 그러한 결정을 대행하도록 하는 것이지요(대의제 민주주의). 이러한 정치적 권리는 근대사회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갖게 되었습니다. 신분제 사회를 극복하고 탄생한 현대의 민주국가는 모두 ‘종교적 중립성’과 함께 ‘정치적 중립성’을 그 징표로 성립했습니다. 이전 사회에서는 종교를 강제했고, 정치적 권리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의 공무원은 예외입니다. 정치적 무자격 상태, 시민권이 없는 상태입니다. 정치인이나 민원인이 공무원을 하대하고, 공무원이 수모를 반복해서 당하는 이유는 기초적인 시민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신분의 사람들이 공무원이기 때문입니다. 시민 대 시민의 대등한 관계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한국의 공무원은 언제부터 시민권이 없었을까? 공무원의 시민권을 제한하는 법령은 아래에서 보듯이 여러번 제·개정 되었습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헌법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보장’이라는 조항을 삽입한 것은, 이승만 정부가 정권 유지를 위해 공무원을 동원한 위법 행위를 벌이다 419 혁명으로 퇴출당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들어선 군사 정부는 또다시 ‘정부에 비판적인 것이 중립위반’, ‘무비판적인 충성이 정치적 중립’이라는 인식을 강제하며 18년 독재를 지속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까지도 그런 인식이 적지 않게 남아있고, 역대 정부들은 모두 권력 유지에 이를 활용해왔습니다. 외국의 사례와 교훈점 [독일 바이마르헌법 제130조 제1항] “공무원은 전체의 봉사자이지, 특정 정당의 봉사자가 아니다.”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정당정치적 중립성은 어디까지나 관직행사에 국한되는 것이기 때문에 공직자의 국민으...

ChatGPT에 물어본 "518 민중항쟁과 미국의 책임"

ChatGPT에 물어본 " 518 민중항쟁과 미국의 책임" 518 민중항쟁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며, 미국의 역할도 큽니다. 미국은 대한민국의 군부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518 민중항쟁 발생 당시에도 군부 정권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미국은 대한민국의 군부 정권을 지지하면서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군부 정권은 자신들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해도 미국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지원으로 인해 군부 정권은 더욱 강력하게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인권 침해를 일삼았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518 민중항쟁 발생 당시에 군부 정권을 지지하면서 국내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와 민주화 요구 운동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미국은 이러한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ChatGPT에 물어본 "518 민중항쟁의 배경과 교훈"   518 민중항쟁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시작되어 군부 정권과의 격돌로 인해 수백 명의 시민이 희생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군부 정권에 대한 민중의 항거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배경: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군부 정권이 탄생하였습니다. 군부 정권은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인권침해를 일삼았습니다. 대학생 등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민주화 요구 운동을 전개했으며, 광주에서는 전남대 교수와 시민들이 군부 정권에 반발하며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교훈: 군부 정권의 타도와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해 민중의 항거는 중요합니다. 민주주의는 인권과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입니다. 시민의 역할과 중요성이 큽니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항거해야 하며, 시민의 뜻을 존중하는 정치적 체제가 ...

독일의 가장 보수적인 정당의 대학 정책 - 김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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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청취한 김누리 교수 강연 중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김누리 교수 - 서울대학교 사범대 - 독일 브레멘 대학교 현)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현)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 국민의 힘이 강당 맨 오른쪽 끝에 있고 그 한 발짝 떨어져 민주당이 있어요. 근데 얘들은 맨 끝에서 바로 옆 한발짝 떨어져 있으면서 자기들이 무슨 진보라는 말을 자꾸 해요. 맨 오른쪽 끝에 있는 애들은 자기들이 보수라고 해요. 완전히 거짓의 언어들이예요. 그러니 국민들이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어요.이 두 당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너무나 격렬하게 싸우죠. 왜 싸우겠어요? 차이가 없기 때문에 싸우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세요. 정강 정책의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삼성 이재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건 뭐 100% 똑같죠. 이재용 사면해야 된다고 전부 손들고 환영했잖아요. 아무 차이가 없어요. 이게 지금 한국 정치의 비극입니다. 한국은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뽑을 놈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민주화가 제대로 될 수 없고 사회적으로 진보가 전혀 없는 거지요. 극단적으로 오른쪽에 서 있는 두 보수주의자들이 결국은 한쪽은 보수인척 한쪽은 진보인 척하면서 아무런 차이 없는 정책을 내놓고, 지역을 근거로 국민들을 경쟁시키고 있어요. 그러니 민주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없는 거죠. 여기에 세 발짝 떨어져서 진보정당들이 있지요. 또 여기서 세 발짝 떨어져서 독일의 가장 보수적인 정당인 ‘기독교민주당’이 있어요. 이해가 가세요? 독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당이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당보다 진보적이라는 말이지요. 독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당인 앙겔라 메르켈이 한국 대통령 선거에 나온다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좌파, 종북 난리도 아닐거예요. 지금 독일의 가장 보수적인 정당인 기독교민주당의 대학 정책은 어떤가요? "대학 시험은 보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시험만 보고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과장된 안보 위기와 축소된 경제위기(202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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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장된 안보 위기와 축소된 경제위기 희망은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격언입니다. 주식투자뿐 아니라 정치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요. 위정자가 타당한 근거 없이 주관적 바람이나 욕망으로 국정의 목표를 정하고 정책을 펼친다면 그 나라 정치는 심각한 혼란에 빠져들 것입니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행태를 보면 이 말이 딱 맞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1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 대통령과 김기현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만찬이 있었는데요.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민주노총 수사를 언급하며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 폐지는 잘못”이라고 대공 수사권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국민의힘 지도부는 다음 날 “민노총(민주노총)은 노동운동을 빙자한 간첩단이 암약하는 근거지”라며 “당력을 모아 종북 간첩단과 전쟁을 선포한다”(김기현 대표)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는 때를 맞춰 ‘북한지령설’을 크게 보도했지요. 민주노총을 ‘간첩단 근거지’라고 매도하며 노골적인 공안몰이에 나선 겁니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폐지는 3년의 유예를 거쳐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됩니다. 고문과 조작을 통해 간첩을 양산한 국정원(중앙정보부-안기부)의 흑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개혁 입법이었는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이제 와 이를 뒤집겠다고 근거 없는 여론전을 벌이고 국정원은 여기저기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돌아치고 있습니다. 명분도, 근거도 없는 무책임한 공안몰이는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어리석은 선택일 뿐입니다. 공작으로 만들어낸 안보 이슈를 과장해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고 정권에 닥쳐오는 위기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희망 사항일 뿐입니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는데요. 3월 31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11월 말 이래 처음으로 지지율이 30%로 떨어졌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부...

미국 정보기관 도‧감청에 항의조차 못하는 정부 (23/4/10)

  미국 정보기관 도‧감청에 항의조차 못하는 정부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정부 고위 관리들을 상대로 불법 도·감청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과 무기 정보, 러시아의 군사작전 첩보 등이 담긴 기밀문건 100여 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출됐는데, 이 중 최소 2건이 한국 고위 당국자들을 감청한 내용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기밀문건에는 한국 국가안보실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할지 여부를 논의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문희 당시 외교비서관이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의 훼손 가능성을 지적했고, 김성한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155mm 포탄 33만 개를 폴란드에 우회 판매하는 방안을 언급했다고 나온다.   한국은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방독면과 방탄조끼, 의약품 등을 지원하되 살상무기 제공에는 선을 그어왔다. 그러나 작년 11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를 통해 미국이 자국 보유 155㎜ 포탄을 먼저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한국에서 포탄 10만 발을 구매해 재고를 메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뉴욕타임스>는 “동맹국들에게는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일 것”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가 동맹국에 대해 도·감청을 해 온 사실이 발각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일했던 스노든은 국가안보국(NSA)이 ‘프리즘’(PRISM)이라는 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자국민 수백만 명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할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우방국 정상들도 감시하고 있다고 폭로해 세계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미국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를 2002년부터 10년 넘게 도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유럽연합 지도자들과 관계가 어색해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동맹국 정상들을 상대로 더...

4.3 민중항쟁,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4.3 항쟁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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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민중항쟁,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 4.3 항쟁 (2/2) 95%노동자가 참여한 3.10 총파업 분노한 제주도민들은 미군정에 ‘발포책임자 처벌과 경찰수뇌부 해임, 연행 인사 석방, 경찰 무장해제와 경찰 내 친일 민족반역자 축출’을 요구했습니다만, 답변은 없었습니다. 3월 10일, 학생들은 동맹휴업을 하고, 노동자들은 기계를 멈추고, 공무원들은 행정을 멈추고,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은 철시하고, 길거리의 상가는 문을 닫았습니다.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3월 22일까지 관공서, 학교, 금융기관, 교통기관, 발전소, 공장 등 전체 기관의 95%인 156개 기관단체, 41,211명이 참여한 총파업이었습니다. 제주도의 총 파업은 해방을 막아나서며 독립운동세력을 탄압하는 미군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친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항쟁이었습니다. 서북청년회와 ‘레드아일랜드’ 그러나 미군과 경찰은 제주도를 ‘빨갱이 섬’이라 규정하고 서북청년회를 앞세워 무자비한 테러로 주민을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가 벌인 그것보다 더한 제국의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윤도는 특공대원에게 그들을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 명씩 등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눈이 튀어나오며 꼬꾸라져 죽었습니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가 더 많았지요. 여자들 중에는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윤도는 젖먹이가 죽은 엄마 앞에서 바둥거리자 칼로 아기를 찔러 위로 치켜들며 위세를 보였습니다. 도평리 아기들이 그때 죽었지요. 그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꼴을 보니 며칠간 밥도 못 먹었습니다." 출처: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271쪽 1948년 4월 3일-‘탄압이면 항쟁이다’ 미국은 애초에 조선을 자국의 전초기지 정도로 생각했기에 독립운동세력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친일청산은 커녕 일제에 부역했던 자들을 파트너로 삼았습니다. 이들에게 권력을 쥐어줌으로 이제 독립운동 가문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 조차 어려운 상황에...

4.3 민중항쟁,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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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민중항쟁,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 4.3 항쟁 (1/2) 4.3 항쟁 정신에는 평화와 통일의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주도민은 독립이 되었는데도 친일파가 친미파로 둔갑해서 독립운동세력을 탄압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미군 치하에서 진행하는 '분단국가' 건설은 더더욱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미 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3만여 명의 도민을 학살한 사건이 바로 4.3 사건 또는 4.3 항쟁입니다. 이 비극적인 역사는 수십 년간 ‘금기어’로 숨겨져 있었지만, 우리 노동자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주 4.3은 아무런 이유 없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서 아무런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 억울한 것입니다.“ 시 <아무런 이유 없이> 김경훈 시인 - 해방 후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제주도민 3만 명은 왜 죽어가야 했을까요? 흔들리는 섬 - 일본군 요새로 전락한 제주도 제주도는 일본 제국의 본토 사수를 위한 ‘대미 결전의 최후 보루’ 였습니다. 일제는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곳곳에 비행장을 만들고 해안마다 굴을 파는 등 군사기지를 건설했습니다. 노예처럼 끌려가 맨손으로 군사시설을 짓다가 죽어가거나, 일제 맞서 투쟁하다 죽어가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일제는 한반도에 배치된 전체 일본군의 절반에 해당하는 대병력 7만5000여 명을 제주도에 배치하고 도민들을 이끌고 최후의 한 명까지 죽음으로 맞선다는 이른바 ‘옥쇄(玉碎)작전’을 추진했습니다. 그렇기에 제주도민에게 1945년에 해방은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해방’을 뜻했습니다. 해방정국 - 자치의 열망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제주 일제의 폭압을 피해 육지나 일본 본토로 건너가서 생존을 유지하다 해방이 되고 제주도로 돌아온 사람들은 당연히 자주독립 국가에 대한 열망이 높았습니다. 또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해방 후 민중들은 오랫동안 염원했던 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