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일제 식민지 경제 & 이승만의 사대외교 독립노선

[역사] 일제 식민지 경제 & 이승만의 사대외교 독립노선


한국 현대사의 출발점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두 가지 거대한 산

  • 일제강점기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
  • 초대 대통령 이승만

1.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일제가 조선의 경제를 변화시킨 방식을 두고 역사·경제학계는 크게 두 가지 시각으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① 브루스 커밍스의 '개발 식민주의' 관점

  • 서구의 제국주의(원료만 약탈하는 방식)와 달리, 일본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식민국가를 모델로 삼아 조선의 산업화를 직접 추진했다는 시각입니다. 
  • 1920~30년대 농업 생산 증가와 산업화가 실질적으로 존재했으며, 조선식산은행 등이 이를 뒷받침했고, 이 유산이 해방 후 남·북한의 산업화 경로(관료제적 권위주의)에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② 허수열 교수의 '개발 없는 개발(Development Without Development)' 관점

반면, 허수열 교수는 일제의 개발이 '소수 일본인만을 위한 신기루'였다고 강력히 반박합니다.

  • 농업 수탈: 미곡 생산은 늘었지만, 비옥한 논의 대부분(1941년 기준 54%)을 일본인이 차지해 이익을 독점했고, 정작 조선인 농민의 1인당 미곡 수취량은 30%나 하락했습니다.
  • 이중 착취: 1942년 조선 광공업 자산의 95%는 일본인이 독점했으며, 조선인은 철저히 고급 기술 교육에서 배제된 채 하급 노동자로만 착취당하는 차별적 이중구조였습니다. 결국 광복 직후 국내총생산은 일제 이전 수준으로 후퇴했습니다.
  • 무단통치(1910년대) ➡️ 문화통치(1920년대) ➡️ 민족말살통치(1930년대 이후 병참기지화)로 이어지는 탄압 속에서, 겉으로 보이는 '개발'의 수혜자가 과연 누구였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를 밝히는 핵심 열쇠

2. 독립운동가 이승만의 성장과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탄핵의 역사

① 청년기 개화 운동과 한성감옥 투옥

몰락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배재학당에서 서구 문물과 기독교 사상을 접하며 대중 연설가로 성장했습니다. 
독립협회 활동 중 고종황제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5년 7개월간 투옥되는데, 이때 옥중에서 《독립정신》(1904)을 집필합니다. 그는 한국민을 기독교로 교화하고 만국공법과 중립 외교를 통해 독립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사대주의 독립노선(미국화)'을 이때 정립합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 워싱턴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에서 국제법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엘리트 정치가로 명성을 떨칩니다.

②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선출과 충격의 '탄핵'

이승만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초대 임시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그러나 그의 강한 친미 외교 노선은 임정 내부와 큰 갈등을 빚게 됩니다.

  • 갈등의 원인: 위법적인 구미위원부 설치, 미주 교민 자금의 독점 및 상해 임정으로의 송금 차단, 그리고 결정적으로 1921년 워싱턴 회의를 통한 외교 노선이 실패하면서 비판에 직면합니다.

  • 1925년 3월 탄핵: 임시의정원을 무시하고 상해를 장기간 이탈한 점, 재원 독점 등 내정 실책으로 인해 결국 임시의정원에서 대통령직을 면직(탄핵)당합니다.

③ 탄핵 이후의 재기와 대미 외교 활동

1930년대 하와이에 거주하며 동지회를 이끌었지만, 수탈당하던 해외 교민들에게 그는 사기꾼에 가까운 불신의 대상이었습니다.

1932년 김구의 지지로 국제연맹 회의 전권대사 임명 을 계기로 임정내 직책을 받게되었고, 
1941년 미일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중경 임시정부의 주미외교위원부 책임자로 임명되어 대미 외교를 재개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간택에 의해 독재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지요)

맺으며: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


오늘 살펴본 식민지 경제의 두 시각과 이승만의 외교독립노선은 오늘날 대한민국 체제의 뿌리를 형성한 결정적인 장면들입니다. 

화려한 미국 유학파 엘리트 정치인의 이면에 존재하는 '임정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그가 가진 외교 노선의 명과 암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구한말 부터 이승만의 노선은 자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우리나라를 만드는 것은 불가하다는 엘리트 사대주의에 기반했습니다. 철저히 미국의 힘으로 우리나라를 독립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에 기반한 자본주의 국가, 반소·반공 국가 건설의 상은 그렇게 형성되었지요.

이러한 그의 사상과 행동은 제국주의(자본주의) 수탈의 피해자인 민중들과 탄압에 맞서 민중을 이끄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불신이었지만, 미국과 자산가들(심지어 친일파였더라도)에게는 좋은 것이었지요.

그의 이러한 성향은 늘 갈등의 원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현재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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