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이 폭로한 ‘한국 죽이기’의 설계도: 쇼크 독트린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는 단순한 관리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시사저널의 보도가 폭로했듯, 그것은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 자본이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설계도에 따라 한국 경제의 숨통을 조인 치밀한 ‘쇼크 독트린(충격 요법)’의 현장이었습니다.


imf 워싱턴컨센서스의 신자유주의 강제 도입 방법
워싱턴컨센서스의 신자유주의 강제 도입 방법, 한국에 그 방법 그대로 적용되었다.




워싱턴컨센서스의 경제 침탈 정책
워싱턴컨센서스의 경제 침탈 정책


1997년, 30%는 배에서 내려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30%는 배에서 내려야 한다고 했지만...




1.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설계도

국가적 재난을 이용한 ‘약탈의 최적기’

1997년 당시 미 재무부와 IMF가 강요한 정책은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위기 국가에 "금리를 올리고, 시장을 열고, 공공기관을 팔아라"라고 압박하는 매뉴얼입니다. 기사는 이것이 한국을 살리기 위한 처방이 아니라, 국제 자본이 한국 경제를 지배하기 위한 통로였다고 폭로합니다.

쇼크 독트린 수법은 국가가 거대한 재난이나 경제 위기에 빠져 대중이 공포에 질려 있을 때, 평상시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파괴적인 정책을 순식간에 밀어붙이는 방식입니다. 1997년 한국은 그들의 가장 완벽한 실험장이었습니다.

1997년 한국에서 워싱턴컨센서스의 적용

  • 워싱턴. 80년대 말 냉전이 종식되면서 이곳에 자리잡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그리고 미국의 내로라하는 핵심 관계자들은 전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재편하기 위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바로 한국을 비롯한 개발 도상국가들을 상대로 어떻게 하면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 조정 프로그램을 더 잘 관철할 수 있을까에 관한 고민이었다.  

  • 이 관계자들은 90년대 초반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는 합의에 도달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제3세계 국가들이 시행해야 할 구조조정 정책들을 담고 있다. 

  • 8가지 정책 : 정부예산삭감, 자본시장 자유화, 외환시장개방, 관세인하, 국가기간산업민영화, 외국자본의 우량기업 합병 · 매수 허용, 정부 규제축소, 재산권보호 여덟 가지다.


  • 워싱턴 컨센서스는 대상국가들에 이같은 조처를 관철하기 위한 방법론을 담고 있다. 

  • 도입 방법 :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현 정권의 핵심 세력이 연루된 부패 폭로로 정권 무력화, 서로 다른 지지 기반을 가진 중도 성향의 2개 정당 연합 정권 수립.

    • 대선이 있었다는 점, 김현철의 국정개입 비리가 밝혀져 YS정부가 무력해졌다는 점, 김대중과 김종필의 상이한 지지층을 가진 정당의 연합 정권 출범(구조 조정 정책들이 차질없이 실행될 수 있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도 DJ와 JP의 지지기반이 서로 다르다는데 있다. 이는 구조조정에 따라 실질 임금이 삭감되어 가장 고통 받는 저소득층이 자기네가 지지하는 DJ가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구조 조정을 지지했다는 데서 확인되고 있다.)

  • 한국이 IMF사태를 겪으면서 직면했던 일련의 정치과정은 이 과정을 정확히 이행했다.
    그 결과 지금의 한국사회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2. 정권 교체기의 혼란을 틈탄 ‘정치적 항복’


제국주의 자본은 저항의 힘이 약해지는 정권 교체기를 노련하게 이용했습니다.


상대국가를 마비시키기 위해 쇼크독트린은 전형적인 수법이다.
상대국가를 마비시키기 위해 쇼크독트린은 전형적인 수법이다.


  • 대선 후보들의 서약: 기사에 따르면, 당시 대선 후보들은 당선되기도 전에 "IMF 협약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서약서를 미국 측에 제출해야 했습니다. 누가 집권하든 미국의 약탈 설계도대로 움직이게끔 정치적 거세를 당한 것입니다.

  • 저항의 공백기: 정권 초기 국민적 기대가 높은 ‘허니문 기간’을 이용해, 정리해고제와 파견법 등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법안들을 불도저식으로 통과시켰습니다.


3. 살인적인 '고금리'의 함정

IMF는 한국에 30%에 육박하는 초고금리를 강요했습니다.

  • 결과: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건실한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졌고, 주가는 바닥을 쳤습니다.

  • 약탈의 도구: 기업들이 쓰러지자 주가는 폭락했고, 이때를 기다린 미국계 투기 자본들이 한국의 알짜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였습니다. 기사는 이를 '보이지 않는 총칼에 의한 경제 점령'으로 묘사합니다.

3. '제일은행과 외환은행' 매각의 전모


기사는 구체적인 사례로 금융권 매각을 듭니다.

  • 뉴브리지캐피털과 론스타: 한국 국민의 혈세로 살려놓은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을 미국계 사모펀드에 헐값에 넘기도록 압박받았습니다.

  • 이 과정에서 발생한 거대한 시세 차익과 배당금은 고스란히 미국으로 빠져나갔고, 한국의 금융 주권은 통째로 흔들렸습니다.


1997년 IMF로 해고위기에 몰린 노동자
1997년 IMF로 해고위기에 몰린 노동자
(정리해고를 당하면서도 경제를 살리자는 머리띠를 하고있다)



4. 약탈의 고착화: 비정규직이라는 족쇄


노동자의 희생을 담보로 한 '노동시장 유연화'

가장 뼈아픈 약탈은 노동 현장에서 일어났습니다. 쇼크 독트린을 통해 강제 이식된 ‘노동시장 유연화’는 위기가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 그때 박힌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라는 말뚝은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 노동자들의 삶을 옥죄는 거대한 감옥이 되었습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핵심 처방 중 하나는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의 도입이었습니다.

  • 기사가 지적하듯, 이것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이라기보다 자본이 언제든 노동자를 해고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약탈의 합법화'였습니다.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기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닉슨의 후예들이 벌인 연쇄 범죄

시사저널의 보도는 닉슨 쇼크 이후 미국이 어떻게 '금융'이라는 도구로 타국을 약탈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닉슨이 환율로 문을 열었다면, IMF는 법과 제도를 바꿔 한국인의 노동과 자산을 통째로 미국 자본의 먹잇감으로 바친 것입니다. 1971년 닉슨이 금 본위제를 파괴하며 시작된 달러 패권의 위기는, 1997년 한국에서 ‘IMF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쇼크 독트린으로 폭발했습니다.


IMF 경제 지원을 다룬 신문기사
IMF 경제 지원을 다룬 신문기사
(IMF가 직접 빌려준 금액은 불과 200억 달러.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라가 망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적은 액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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